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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혁신성장 청년인재 집중양성(빅데이터)/2019 혁신성장 청년인재 집중양성-빅데이터분석기반 지능소프트웨어

2019/07/21 방일함과 자기 소외

어떤 나이가 되면

철이들어야 하는 것일까.

 

또 철이 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익숙해진다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스물 일곱이라는 나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과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나의 주위의 사람들의

변화를 바라보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

한 없는 열등감을 주기도

또 우월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로 인한 원동력의 뒷 맛은 너무 쓰다.

결과야 어찌되어 보이든

그 과정이 너무 쓰다.

원하는 결과를 얻고 나서도

잠시 달고 이내 쓰다. 

이런 결과는 필연적이다.

 

 

코딩을 공부하면서도

얼마만큼의

어느 정도의 지식과 스킬을 가져야할까

가늠해보지만

소용 없는 일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항상 또 다른 두려움으로 인해 소화되고 만다.

 

그렇지만 나는 

결론을 만듦으로써

그것에 의지 함으로써

잠시나마 안정을 얻길 즐겨 하지만

그로 인하여

나는 지금의 나의 삶을 현실로부터 소외시킨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는데

 

내가 맞이하는 지금을

나는 곧장 소외시킴으로써

나는 존재하지만

나는 곧장 나의 존재를 부정한다.

즉, 나는 괴로움이라는 과정을 항상 선택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필연이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지금의 나의 삶에 대한 방일함

그것은 자기소외인 것이다.

 

왜냐하면

삶은 관찰하는 것이 아니기 떄문이다.

삶은 끊임없는 개입으로부터 탄생되는 

나라는 결과물의 연속이기에.

 

이 불연속적인 '나'라는 결과물의 연속의 소식은

관찰이 아닌 개입이라는 소리는

'나'의 과거도

'나'의 미래도

지금의 '나'에게 개입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삶은 오로지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 선택함이

과거의 나에 의해서나

미래의 어떤 결론에 의지한다면

그것은 지금의 나의 선택이 아니며

최선이 아니다.

 

삶을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은 그렇기에 웃긴 말이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바라보았다.

나의 삶이라고 말하면서도

그저 말만을 해왔다.

삶은 바라보는 것이 아닌 선택이라는 이름의 개입이며 정복이다.

항상 새로운 나라는 결과물을 흔적으로 남기며 앞으로 전진할 뿐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되고 싶다면

무엇을 정말 원한다면

자신을 관찰하는 것부터 포기해야한다.

자신은 바라봄을 포기한다는 것은

남을 바라봄도 포기하는 것이다.

 

관찰함은, 비교함이고

비교함은 방관함이다.

 

관찰 이전에

관찰로 인한 당위 이전에

 

원한다면

바란다면

그대로 행동하면 그 뿐이다.

 

과거의 개입도

미래의 개입도

부정하라.

 

 

남의 무엇을 봄으로써

생겨나는 

열등감과

혹은

우월감으로 인한 모든 뜻과 행동은

그렇기에 방일하다.

방일하기에 스스로를 소외 시킨다.

 

스스로를 소외 시키는 사람의 

뒷모습은 언제나 씁쓸하다.

좋아 보이는 결과물이라 하나

좋아 보일 뿐

안타깝게도 그져

좋아 보일 뿐

 

주위를 바라봄을 멈추자.

나의 삶을 소외시키지 말자.

나의 삶에 개입하자.

삶으로 다시 돌아가자.